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마 전투 (문단 편집) == 양군의 배치와 전력 == [[파일:external/www.the-romans.eu/Zama-1.jpg|width=500&align=center]] 한니발은 카르타고군 보병 대열을 3개 대열로 정돈했다.1열은 리구리아(지금의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의 갈리아인), [[켈트]], 이베리아인에 마우레타니아인까지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진 용병부대로 12,000명, 2열은 리비아와 카르타고 시민병 14,000명, 3열은 한니발 자신의 최정예인 15,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기병]]은 좌•우로 나누어서 우익에는 카르타고의 시민기병 2,000명, 좌익에는 [[누미디아 기병]] 2,000명을 배치시켰다. 여기에 추가로 전투 코끼리 80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보병]] 숫자는 이렇게 보면 40,000명이지만 기록들이 좀 들쑥날쑥한 관계로 대체로 36,000~50,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래도 이 정도면 고대 기록치고는 꽤나 정확하게 일치하는 편이다. 카르타고 1열의 리구리아인과 켈트인들은 모두 켈트식 무장과 전술에 익숙했고, 이베리아 용병 역시 투창과 검을 사용하는 병사들로 켈트계와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지만 멀리서 온 용병들이다보니 로마군의 맞수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로마군이 알프스 산맥 이남의 이탈리아 북부를 공격하는 동안 켈트족이 자주 로마군을 패배시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마우레타니아인은 북아프리카 서부의 병사들로 전체적인 면에서 누미디아군과 비슷한 투창을 든 경보병이었다. [clearfix] 2열의 카르타고 시민병과 리비아 보병은 둥근 원형 방패와 창을 이용해 밀집 대형을 구사하며 싸우는 보병들로 그리스의 호플리테스와 유사하게 싸우는 병사들이었는데, 카르타고 시민병은 로마 시민병과는 전혀 달랐다. 카르타고는 [[피로스 전쟁]] 이후부터 제2차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시민병을 그다지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르타고인 사령관의 경호를 위해 따라붙는 극소수의 호위병을 제외하면 카르타고인의 실전 경험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리비아 보병들은 그래도 무장상태나 훈련에서는 나았지만 여전히 산전수전 다 겪은 로마군의 베테랑을 상대로는 무리가 있었다. 3열의 병사들이야말로 한니발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부대로, 리비우스에 따르면 '브루티인', 즉 이탈리아 남부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많은 수는 처음부터 한니발을 따라왔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이들은 무려 16년 동안 피레네 산맥과 론 강과 알프스 산맥을 넘고 이탈리아 반도를 싹쓸이하며 다닌 괴물들이었다. 종합하면 한니발의 3열은 한니발이 로마 원정을 나설때 따라나선 베테랑 용병에 이탈리아 남부 출신 병사들이 섞인 구성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기병들은 카르타고 시민 기병과 [[누미디아 기병]]이 각각 2,000명씩이었는데, 카르타고 시민 기병은 원래 하급 귀족들에게서 징집되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역시 오랫동안 제대로 된 전쟁을 치러보지 못한 기병들이었다. 누미디아 기병은 친 시팍스파가 끌고 온 병력이었는데, 시팍스도 누미디아의 두 왕 중 한 명이었던 만큼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했겠으나, 왕이 직접 참전한 [[마시니사]] 측 병력보다는 수적으로 열세였다. [[코끼리]]는 80마리나 되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때까지 한니발이 써왔던 코끼리 중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2년 이상 조련시켜야 하는 부대를 급조한 것이다보니 훈련이 잘 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치고 성장조차 끝나지 않은 어린 개체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생물 자체로서의 전투력도 상당한 코끼리를 80마리나 모았던 만큼 최소한의 역할은 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카르타고의 이점은 병력의 양과 핵심 보병진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코끼리 부대의 존재였고, 단점은 베테랑 병력을 제외한 카르타고 시민병들의 형편없는 질과, '''기병 전력의 열세'''였다. 한니발이 기병 전력이 열세인 상태에서 전장에 나선 건 자마가 처음이었다. 결국 한니발은 줄곧 써 왔던 기병 대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전력인 15,000명의 정예 보병대 중심으로 전술을 짜게 된다. 로마군은 4개 군단과 이탈리아 및 기타 동맹군으로 이루어졌는데,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보병 23,000명, 기병 2,500명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누미디아 왕 마시니사가 보병 6,000명, 기병 4,000명을 거느리고 참전했다. 따라서 로마군의 숫자는 보병 29,000명, 기병은 6,000~6,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스키피오는 로마의 전통대로 1열은 [[하스타티]], 2열은 [[프린키페스]], 3열은 [[트리아리]]를 배치했다. 좌익에는 로마군 기병이, 우익에는 마시니사 휘하의 누미디아 기병이 배치되었다. 로마군 1열의 하스타티는 주로 젊은 신병들로 구성되었고 2열의 프린키페스는 보다 나이를 먹은 고참들로 구성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둘의 무장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적을 지치게 만드는 하스타티보다 지친 적을 본격적으로 격멸하는 프린키페스 쪽이 조금 더 중무장을 갖추는 경향이 있었다. 3열의 트리아리는 규정상 숫자도 하스타티나 프린키페스보다 적은 편이었고 나이도 많은 편이라 전면전에 투입되지는 않았고, 대신 노련한 경륜을 살려 전투의 향방을 결정짓는 국면에 예비대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3m에 이르는 긴 창을 들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체력을 보충하다가 적이 끈질기게 버티거나 아예 아군이 패배했을 때 최후의 방어부대로 투입되었다. 당시 로마 속담 중에 '트리아리까지 왔다'는 말은 사실상 패배의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었다고 한다. 로마군의 기병 전력인 4,000명의 [[누미디아 기병]]은 뛰어난 기병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자마 전투에서 주력끼리 격돌해서 이베리아 기병과 갈리아 기병을 쳐부순 쪽은 로마 기병이었고, 누미디아 기병은 경무장 보조전력에 가까웠다. 종합적으로 보면, 로마군은 양적으로도 카르타고군에 크게 밀리지 않았고, 질적으로는 오히려 훨씬 우위에 있었다. 특히 이전까지와 달리 기병 전력이 크게 우세했고, 보병 전력도 양과 질을 모두 따지면 카르타고군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 거기에 계속된 승리로 사기 또한 절정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